훈육을 잘하면 아이와 사이가 좋아질까요? 저는 한동안 그 반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믿으며 더 단호하게 말하고 기준을 세울수록, 이상하게도 아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눈을 피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방법을 바꿔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나 전달법을 점토 역할놀이와 함께 써보고 나서야,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점토놀이가 훈육에 효과적인 이유 : 촉각 자극과 정서 조절
점토놀이가 단순한 놀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써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물조물 주무르고 반죽하는 동작 자체가 아이의 심리에 꽤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촉각 자극(Tactile Stimulation)과 관련이 있습니다. 촉각 자극이란 피부를 통해 들어오는 감각 정보가 뇌의 감각 처리 영역을 활성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아이가 점토를 손으로 주무를 때, 손바닥과 손가락 끝에 전달되는 다양한 압력과 질감이 신경계를 자극해 긴장을 완화하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평소에 훈육 이야기만 꺼내면 몸을 굳히던 아이가, 점토를 손에 쥐고 있을 때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여기에 더해 정서 조절(Emotional Regulation)이라는 개념도 함께 이해하면 도움이 됩니다. 정서 조절이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스스로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다스리는 능력을 뜻합니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은 유아기에 이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이후 사회성과 학습 능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촉각 매개 놀이는 유아의 정서 안정과 공감 능력 향상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 육아정책연구소).
점토로 눈사람을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이 활동에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는 엄마 눈사람을, 엄마는 아이 눈사람을 각각 만든다
- 물감과 사인펜으로 눈사람의 표정과 외모를 자유롭게 꾸민다 (면봉으로 팔을 표현할 수 있다)
- 완성된 눈사람을 들고 서로의 역할을 바꿔 역할극을 진행한다
- 한 회차가 끝나면 눈사람을 새로 꾸며 다른 상황으로 이어간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눈사람을 꾸미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작은 의식처럼 작동했습니다. "이제 이 눈사람이 나야"라는 인식이 생기니까, 역할극에 더 진지하게 참여하더라고요. 그냥 말로만 역할을 바꾸자고 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나 전달법 적용 후 실제 변화 : 훈육과 공감의 균형
나 전달법(I-Message)이 무엇인지는 많은 분들이 대략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서 나 전달법이란 아이의 행동에 대해 비난이나 평가 없이 사실만 말하고, 그 행동이 부모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1인칭으로 전달하는 대화 기법입니다. "너는 왜 이러냐"가 아니라 "네가 이렇게 하면 엄마는 이런 마음이 든다"는 식으로요.
이 방법이 좋다는 건 알았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머릿속에서 문장 구조를 조립하느라 대화가 뚝뚝 끊겼습니다. "OO가 안 씻으면, 엄마가 마음이 아파"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적응이 안 되는 초반에는 말을 하다가 중간에 "아 이거 나 전달법이 아닌데"하고 멈추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역할극을 거친 뒤에 나 전달법을 쓰니 체감이 달랐습니다. 아이가 이미 역할극에서 "엄마 입장"을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인지, 나 전달법으로 말할 때 훨씬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이것이 역할극의 공감 훈련 효과와 연결됩니다. 공감 훈련(Empathy Training)이란 타인의 감정과 관점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 공감 반응을 이끌어내도록 훈련하는 접근법을 뜻합니다. 한 번이라도 엄마 역할을 해본 아이는 "엄마가 왜 저렇게 말하는지"를 몸으로 이해한 셈입니다.
아동심리 분야의 연구에서도 역할 교환 방식의 놀이가 아이의 마음이론(Theory of Mind) 발달을 촉진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됩니다. 마음이론이란 타인이 자신과 다른 생각, 감정, 의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인지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보통 만 3~5세 사이에 급격히 발달하는데, 역할극이 그 발달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출처 : 한국아동학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나 전달법은 말로만 배우면 금방 체득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습관이 완전히 바뀌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점토 역할극을 통해 아이도 함께 맥락을 공유하고 나니, 나 전달법이 훨씬 잘 먹혔습니다. 아이도 변했지만, 저도 변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수다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 것도 이 즈음부터였습니다.
나 전달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기까지 가장 중요한 건, 완벽하게 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실수를 반복했지만 그게 오히려 아이와 더 많이 대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처음 이 방법을 시도할 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점토 하나 꺼내서 눈사람 하나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보시면 됩니다. 완성도 있는 역할극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역할을 바꿔보는 그 짧은 순간 자체가, 서로를 이해하는 작은 문을 여는 일입니다. 저는 그 문이 생각보다 훨씬 가볍게 열렸다는 걸,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이와 저 모두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 그게 이 활동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아동심리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 도서 - 우리 아이 잘 자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