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아이와 책만 읽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주다 보니 아이도 저도 지루해지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책 속 동물을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시도했던 놀이가 있습니다. 도화지 한 장으로 시작한 이 놀이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책 읽기와 미술활동을 함께 엮은 이유
아이들은 대부분 동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 아이도 자연관찰 책이나 동물이 나오는 그림책을 유난히 좋아했는데요. 단순히 책장을 넘기며 보는 것을 넘어서, 책 속 동물을 직접 만져보고 표현할 수 있다면 훨씬 더 깊이 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교육학에서는 '다중감각 학습(Multi-sensory Learning)'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보고, 듣고, 만지고, 직접 움직이면서 배우는 방식을 뜻하는데요.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여러 감각을 함께 사용할 때 아이의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 미국국립생물정보센터). 저도 그림 그리는 것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편이어서, 아이와 함께 미술놀이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도화지에 동물 얼굴을 대충 그려주고 색칠만 시켰는데요. 그걸 가면으로 만들어주니 아이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되니까 훨씬 더 집중해서 만들고, 완성된 뒤에도 계속 가지고 놀았습니다.
역할놀이로 확장되는 순간
가면을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제가 실제로 했던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을 펼쳐놓고,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동물을 고르도록 합니다.
- 도화지에 동물 얼굴 윤곽을 크레용으로 그려줍니다. 이때 눈과 입 부분은 나중에 뚫을 수 있도록 표시만 해둡니다.
- 아이가 크레용으로 자유롭게 색칠하고 꾸미도록 합니다. 완벽하게 그릴 필요 없이 아이 마음대로 하도록 두는 게 중요합니다.
- 다 꾸민 뒤 가위로 얼굴 윤곽을 오리고, 눈과 입 부분을 뚫어줍니다.
- 귀 부분에 고무줄을 끼워서 아이가 직접 얼굴에 쓸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이 과정에서 '창의적 표현(Creative Expression)'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창의적 표현이란 아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각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을 말하는데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아이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자신감도 함께 자랍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가면을 완성하는 순간 아이가 기쁨의 함성을 지르더라고요. 그리고 바로 가면을 쓰고 "어흥!" 하면서 호랑이 흉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 봤던 동물을 이제 자기 자신이 되어 표현하는 거죠. 이게 바로 '역할놀이(Role Play)'의 시작입니다.
역할놀이는 단순히 재미있는 활동이 아니라, 아이의 사회성과 언어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을 통해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인 '공감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아교육 현장에서도 역할놀이는 중요한 발달 촉진 활동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놀이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
가면만 만들어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확장하면 놀이가 훨씬 풍성해집니다. 저는 발바닥 모양으로 오린 종이를 방 바닥에 여러 개 붙여두고, "책에 나온 곰처럼 살금살금 걸어볼까?" 하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진짜 곰이 된 것처럼 네 발로 기어가면서 발바닥 모양을 따라 움직이더라고요.
이런 활동을 전문 용어로 '통합적 놀이(Integrated Play)'라고 합니다. 미술, 신체활동, 언어표현이 하나의 놀이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이는 형태를 말하는데요. 아이는 놀이를 통해 여러 영역의 발달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배움이 일어나는 거죠.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니 제 생각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가면을 쓰고 동물 소리를 내고, 동물처럼 걷고, 책 속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재구성하면서 놀았습니다. 이 모든 게 도화지 한 장에서 시작된 거예요.
제 경험상 이 놀이의 가장 큰 장점은 특별한 준비물이 필요 없다는 점입니다. 집에 있는 도화지, 크레용, 가위, 고무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비용 부담 없이 아이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 만든 것을 쓰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인 저도 뿌듯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을 단순히 읽어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책 속 세계를 현실로 끌어내는 놀이를 시도해보시길 권합니다. 아이의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지, 그리고 작은 놀이 하나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줄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놀이를 통해 아이와 더 가까워졌고, 육아가 조금 덜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참고 : 도서 - 우리 아이 잘 자라고 있나요?